02.
<작은따옴표에서 큰따옴표가 될 때>
‘회사가 내 생각과 다르다고 도망가지 않겠어!’ 무턱대고 환상 갖지 말기. 입사 전에 나 자신과 한 약속이다. 출판사도 이익을 내야 유지되고, 좋은 책이 많이 팔려야 한다. 책을 애정하는 마음 하나로는 부족하거니와, 책을 만드는 모두가 함께 맞물려야 한다. 일을 애정할수록 환상에 예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찬 마음가짐으로 시작한 회사 생활은 역시 녹록지 않다. 3개월간 먹은 내용이 많은데, 죄다 소화되기까지 오래 걸리는 상황. 내가 이런 부분조차 모르다니! 모르는 만큼 배우고 싶으면서도 내 능력치의 적나라한 현실이 나조차도 허용되지 않는다. 결국 어떤 질문은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작은따옴표 안에 갇힌다.
갈피를 못 잡을 때면 따끔한 조언이 날아온다. 과장님과 대리님은 나를 교정 중이다. 사실, 누군가의 성장을 도와주고 기다린다는 건 되게 수고스러운 일이다. 쓴소리하는 처지에서도 내뱉을 말과 감정을 결정해야 하며, 듣는 귀가 많으면 이미지 변화도 각오해야 한다. 이 말들이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며 성장하길 바라기 때문에 하는 말임을 상대가 알지는 미지수. 그럼에도 하는 것이다.
열심히 받아먹고 빠르게 성장하는 것. 다른 무엇보다 두 분을 돕는 것이라고 느낀다.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남몰래 한숨을 쉬기도 한다. 하루 종일 일만 바라본 날은 아무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시끄러운 음악을 듣기도 한다. (실리카겔의 <Desert eagle>을 강추한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 약간의 지침도 있는 듯하다. 이렇게 앞만 봐도 되는 것일까?
그런 나날 속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두 번째 외근을 하게 된 날, 북스톤에서 펴낸 신간 <누구나 혼자 서는 순간이 온다> 김나이 작가님의 컨설팅 이벤트를 서포트했다. 컨설팅에 참여해 주신 세 분은 작가님의 오랜 독자로, 팬심과 인심 사이를 넘나들며 대화가 진행됐다. 이미 혼자 설 준비가 된 분들임에도 배움을 멈추지 않는 모습이 피부에 와닿았다.
모두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 비슷한 고민을 들고 온 이들은 작가님의 컨설팅뿐만 아니라 서로에게도 묵직한 마음을 건넸다. 그 사이로 교차하는 눈은 시골의 밤하늘에서 보이는 별보다 더 빛난다. 내게도 ‘막내실록 쓰신 분 맞느냐’며 응원해 주시던 따뜻한 독자님들. 열정에 동화된 나는 그 자리에서 작은따옴표를 풀고 대답했다. “네, 막내실록의 수연이가 접니다...!”
이 책이 기획에서 멈추어 출간되지 않았고, 그래서 이벤트도 진행되지 않았다면. 이 책을 찾는 이들의 고민은 어디로 흩어졌을까? 누구나 혼자 서는 순간이 온다, 그 말인즉슨 일하는 누구든 이 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내가 하는 일은 독자에게 필요한 책을 열심히 내밀어보는 것. 앞으로도 내가 담당하는 책이 알맞은 독자에게 가닿길 바라는 마음의 불씨가, 다시 지펴졌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맡게 된다면 어떨까?’ 나를 출판사로 끌어당긴 것은 단순한 상상이었다. 그러나 출판이라는 일은 상상으로는 넘볼 수 없이 방대하다. 그리고 내가 그 가치를 전하는 데에 한 꼭지를 담당하고 있다. 그 사실이 이따금 두려우면서도, 자주 충만하다. 그러니 나는 큰따옴표 연습생으로서, 오늘도 남양주에서 성수로 향한다. 앞으로도 도망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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